[ 우리 엄마 칠순잔치 하던 날 ]
장남인 제 머리에서 어느 덧 늘어가던 흰 머리 몇 가닥이 이제는 검은 머리만큼 많아진 것을 보던 우리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마도 언제나 품 안의 아기같던 아이가 삶의 굴곡진 풍랑들을 헤쳐나가던 모습을 모두 지켜보셨던 분이니 그토록 안스러워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본인이 지금의 제 나이였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처없이 흘러간 세월들과 함께 흘러간 고난의 삶들을 슬프게 회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 이상이나 커버린 어느 덧 중년이 훌쩍 깊어버린 자식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시던 우리 엄마의 눈을 계속 쳐다보다가는 나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듯 하여 삐죽삐죽 바닥만 쳐다보았습니다.
4살 터울 남동생과 함께 엄마의 칠순을 준비하면서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들로 인해 왠지 모르게 아직 살아계시다는 기쁨과 더불어 앞으로의 건강을 기원해야 할 자리가 마음 한편으로는 자식들에 대한 그간의 고생이 안스럽고 맘편하게 호강시켜 드리지 못하는 부족한 자식으로서의 죄스러움이 같이 상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부르지 않고 아빠, 엄마, 나, 내 사춘기 아들, 동생, 제수 이렇게 6명만 모여서 조촐하게 저녁이나 먹자고 하셨을 때 내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었으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 화려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하는 미안함에 참 마음이 무겁더라구요.
[ 작지만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준비한 하루 ]
사람은 정말 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껴야 한다는 말이 맞아요. 저는 동생네가 사온 생화로 장식된 저런 70 케이크가 있는 줄도 전혀 몰랐거든요. 꽃과 과일과 마카롱으로 장식된 케이크를 보고 다들 엄청 놀라고 좋아했습니다. 긴쪽 길이가 15인치 노트북 1.5배 정도 될 정도로 생각보다 큽니다. 너무 예쁘지 않나요? 궁금하시면 동생한테 다시 물어봐서 가격과 구매처를 올려보도록 할께요. 얼추 10만원은 그냥 넘을 듯 하긴 한데...
동생네 부부는 2살 아이가 열감기가 걸린 상태에서도 짬을 내어 현수막에 케이크에 준비를 꽤 많이 했는데 정작 저는 식당 결제만 하고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네요. 편지라도 하나 써서 드렸어야 했는데.
[ 원주 행구동 고궁한정식 ]
주소 : 원주시 행구동 산393 (운곡로 242) 2층
전화 : 033-747-3826
메뉴 : '소갈비찜한상','보리굴비한상','LA갈비구이한상','코다리찜한상' 등등
가격 : 저희는 인당 35,000원짜리 소갈비찜한상 6인분 사전예약함
* 한상요리는 코스요리라 예약을 하면 재료 구매, 준비때문에 며칠 임박해서는 취소가 안된다고 하니 일정의 변동이 없을 때 예약을 하시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듯 합니다.
여러개의 실로 이루어져 있고 서빙해주시는 분들의 친절도는 매우 우수합니다. 서빙도 매우 조심스럽고 숙달된 직원들이라는 느낌이 확 옵니다. 음식을 세팅되기 전에 현수막 달고 케이크 열고 가족끼리 한 15분 정도 축하노래 부르고 사진도 찍고 엄니 칠순을 기념하는 소소한 행사를 했는데 직원들께서 같이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와~~~!!!. 음식이 코스로 3번정도에 걸쳐 나오는데 하나같이 얼마나 정갈하고 맛도 좋은지요. 식당에 가면 이러쿵 저러쿵 맛을 평가하는 울 아빠님께서 너무 칭찬을 하시고 감탄을 하시는 걸 보고 꽤 놀라웠습니다. 우리 아빠께서 팁을 드리는 걸 머리털 나고 처음 보았습니다. 체질적으로 소음인이라 기름진 음식을 잘 못드시고 양도 작은 울 엄니도 다양하게 맛을 잘 보시더라구요.
홍어요리는 거의 삭히지 않은거라 크게 부담없이 드실 수 있고 회도 무척 신선해서 어지간한 횟집에서 먹는 것 이상의 식감이었습니다. 음식맛, 세팅, 종류, 서빙 등 정말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전히 만족한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 엄마의 칠순을 기념하며 ]
제가 2021년 부터 일주일에 3만~5만원씩 자동으로 이체되어 투자되고 있는 펀드 상품이 있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희 엄니가 동남아 휴양지로 여행을 가고 싶어하시는데 뱅기타고 가서 호텔과 로컬식당만 다니는 것 보다는 색다른 경험을 시켜드리는 게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 이 돈을 가지고 부모님 크루즈 여행하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드레스코드 맞춰서 디너파티에 참여해야 하니 울 엄니 파티 드레스도 하나 구매해 볼까 해요. 지금도 허리아파서 저주파마사지기가 없으면 잠을 못주무시는데 제가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더 안좋아지시기 전에 평생 잊지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드리는게 당연한 도리인 듯 합니다.
오늘도 혼자 죽어라 말 안듣는 사춘기 손주를 혼자 키우고 있는 제게 전화하셔서 '내 아들은 밥을 제대로 먹고 다니니?' 하시는 전화기 너머의 엄마의 목소리에 눈물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 느껴져서 저도 울컥했네요.
여러분도 부모님이 부끄럽고 미운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기억들이 내 자존심과 고집이 문제였던 경우가 꽤 많았다는 걸 깨닫는데 참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그러니 부디 앞으로는 좀 더 그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혹한의 날씨가 지나가고 따뜻한 봄날이 오면 엄마와 함께 꽃 축제 보러 한번 다녀와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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