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작년 이맘 때 였다. 서로가 삶에 지쳐 하루하루 기어가듯 겨우겨우 버티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동생과 나는 무작정 원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과거 업무차 수도 없이 제주를 드나들었기에 제주 여행이 처음인 4살터울 동생을 가이드해서 다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한정된 시간 내에 멋지고 좋은 추억들만 주고싶다는 생각에 노선을 정하는데는 꽤나 힘이 들었다.
마음을 정화하는데는 머리를 비우고 몸을 힘들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건 이미 20년 전 군대에서부터 몸소 느껴왔던 세대라 조금 힘들지만 풍경이 좋은 서귀포쪽 7코스를 선정하게 되었다.
올레 6코스 종점 겸 7코스 시작지점에서 간세 스탬프 도장을 의미심장하게 꾹 눌러찍고는 일찌감치 출발을 했다. 매화공원쪽으로 향하다보면 벌써 이렇게 빨간 동백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모습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신기했다.

구형 휴대폰으로 너무 많은것을 담으려 하다보니 오히려 복잡한 사진이 되어버렸지만 선명한 붉은 빛과 그 내부의 노란 꽃술이 대비되는 것이 아마추어 촬영객의 머쓱한 결과물을 보완해주는 듯 하다.




한일 우호의 공간으로 조성되었다는 매화공원을 가로지르는 코스인데 아직 매화가 만개하기에는 좀 이른 시기인지 기대만큼의 만발한 꽃세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걸어다니면서 막 찍은 사진들이라 초점도 하나도 안맞지만 정취 하나만큼은 끝내준다.


매화공원을 돌아 나갈때 쯤이면 저 멀리 천지연폭포가 보인다. 왼쪽사진이 눈으로 보는 그대로 촬영된 것이고 우측사진은 확대된 사진이다. 잘 보이지도 않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한라봉인지 레드향인지 잘 모르겠지만 7코스 중간마다 큼직하게 달린 과일나무가 많이 보인다. 길가에 노출되어 있는데도 관광객들이 손을 대거나 서리를 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확실히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동체 시민의식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높아진 것을 실감한다.





올레 7코스는 삼매봉 공원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루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르막이 상당해서 체력적으로도 부담이되고 정상에 올라가도 크게 볼 거리는 없으니 체력을 아끼고 시간을 단축하고자 하는 탐방자들은 처음부터 진입하지 말고 그냥 대로변을 따라 직진으로 '외돌개'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삼매봉 공원 정상 정자 아래쪽에는 화장실이 있지만 급한 경우라면 외돌개 주차장쪽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 더 빠를 듯 하다.



외돌개방면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황우지해안'이 나타난다. 울퉁불퉁하지만 넓은 해안 조망공간이 삼각대를 놓고 단체사진 촬영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화면의 중간에 푸른 바닷물이 들어오고 아래는 돌무더기가 그리고 먼 위쪽으로 절벽과 숲이 배치되어 하늘색-녹색-갈색-파란색-검은색-갈색의 다양한 수평적 색감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어 인생샷을 찍기에도 좋은 곳이다. 유독 점프샷을 찍는 젊은 단체여행객들이 많이 보인다.



기암의 형태를 한 외돌개를 보며 쭉 지나간다. 아직 갈 길이 한참이나 남았다.

외돌개를 지나면 이런 해안가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오르막이 많아 경치를 감상하면서 가기에는 조금 힘들어하는 일행이 있을 수 있으니 노약자, 어린이등을 동반해서 7코스를 완주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듯 하다.







하수처리장 옆으로 지나 내려가면 '속골'이라는 곳을 지난다. 육지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골짜기이다. 속골 근처에는 임시 화장실이 있고 여기를 지나면 한참동안 화장실이 없으니 애매할 경우에는 미리 다녀오는 것을 권한다.


법환포구로 향하는 해안길은 이런 몽돌 자갈길을 걸어야해서 발목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신발을 헐렁하게 신고 이 길을 걷다가는 발목부상을 입기 십상이니 신발끈을 꽉 동여매고 스틱을 짚어가며 천천히 이동하기를 권한다. 그래도 이국적인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다.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한잔 준비해 왔다면 이 길의 끝에서 잠시 걸터앉아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꽤나 길고 힘들게 이 길을 걷다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법환포구가 눈에 들어온다. 법환포구는 관광객이 많고 그만큼 음식점들도 많은 규모있는 해안포구이다. 특히 기념품점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참 힘들다.










40대 남자 둘이서 이런 곳에 들어와서 뭔가를 본다는게 참 어색할텐데 지나치면 너무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번 들어갔다가 이것저것 많이도 샀다. 짐이 무거워지면 안되서 초콜릿이나 부피가 큰 제품들은 공항에서 사기로 하고 향수종류만 샀는데 감귤향수가 은근히 좋아서 나중에는 몇개 더 사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 만땅 받을 때 감귤향수 한번 쓱 뿌리면 주변 사람들도 향기가 너무 좋다며 한마디씩 했다.




법환포구를 거의 지날때 쯤이면 '최영장군전승비' 옆에 해녀촌 식당이 있다. 이 곳은 동생과 7코스를 완주하고 나서 내일 다시 가서 한번 먹을까하고 고민할 정도로 해산물이 신선하고 반찬이나 모든것이 참 좋았던 곳이다. 물론 떨어진 기력에 버터구이 전복과 제주 막걸리 한잔이 맛이 없을수가 있겠냐만은 친절한 젊은 주인분덕에 더 없이 좋은 추억이 되었다.







'서건도'부터 종점까지는 지리한 마지막 길이 이어진다. 강정포구부터 바닷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도로길을 한참을 걸어야하고 이후에는 앉아있을 곳 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운 비닐하우스 가득한 시골동네를 지나가야 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강정포구 이후부터는 사실 그냥 무념무상의 극기훈련 같았다.
종점이라야 버스 정류장 하나 있는 곳이라 생각보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 코스를 완주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하나 좋은 추억을 쌓아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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